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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5. 25世 〉4. <요재공>송곡공휘대익행록(松谷公諱大翼行錄)
1. 문헌 목록 〉25. 25世 〉6. <부정공>성재공휘동훈가장(誠齋公諱東勳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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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정공>죽포공휘동규묘표(竹浦公諱潼奎墓表)
竹浦公諱潼奎墓表 自古錦城往往多高人逸士而竹浦趙公潼奎其一也公字池龍籍玉川以高麗侍中諱璋爲始貫之祖連數世簪祖奕奕至諱元吉號農隱勲封玉川府院君諡忠獻是生諱瑜號虔谷文科官典農寺副正及鼎革入杜門洞自靖以守義是生諱崇文號竹村武科兵馬節度使諡節愍 端宗丙子之禍與其子敎官公諱哲山號龜川同殉後俱享謙川院敎官生諱瓊號杜門痛深家禍終身不仕寔公十七代祖也德뵛達希休邦洙勲高曾若祖禰而皆業儒羅州林氏之圭女其妣也公生而天姿非凡狀貌凝重自幼不隨群兒遊戲稍長文藝大就而以古人爲已之擧爲用力焉事親主承順而以悦其志意供甘煖而以適其口體愛諸弟同枕被而宿分美味而食每於家間吉凶必準朱文公家禮溫公雜儀行之庚辰丁外憂哀毀逾制朝夕上壕雖風雨寒暑不廢三燧如日遂服勤而養母夫人公則衣常不全食常不豊而母之所使莫不畢給母夫人且以衰癃之年不能起歩或思曬風晹公輒負行庭除數餉時而入室及遭艱情文亦如前喪公生平以孝友爲主本而廉潔自守且見時不古遂絶意交遊貧窮自足而隱居行義或値良辰和煦以幅巾芒鞋逍遙山水間每誦晦翁詩琹書四十年幾作山中客之句而自樂焉 高宗丙申二月朔日壬寅五月二十八日公之生卒而葬内基村後先塋下坤坐配咸平李氏泰憲其考甲辰七月二十五日生 卒墓祔左男鎔元鎔亨鎔義鎔貞女金基萬朴昌原孫曰雲吉雲洸曰雲起雲燮雲炳雲石雲珠曰雲湶雲鍾曰雲甲雲鎬雲儀餘不錄鳴呼公之孝友廉潔可以需世而但時丁叔季未能展施良可惜也雖然其事行爲鄉邦模楷者固不淺矣是可尚也鎔元請余以表墓之文余固辭不獲據狀畧撮而副之如右系以銘曰 公之所主孝友其行矣公之所守廉潔其志矣是誰之墓逸士攸藏矣吁嗟樵牧母或戕之矣 歲丁未仲秋上浣 坡平 尹堯重 撰 죽포공휘동규묘표(竹浦公諱潼奎墓表) 옛 부터 금성에 간간히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과 초일한 선비가 많이 나왔는데, 죽포조공 동규가 그 중 한사람 이었다. 공의 자는 지룡(池龍)이요, 적은 옥천인데 고려시중 장(璋)을 비조로 삼고 여러대를 이어 규조가 혁혁 하더니, 휘 원길(元吉)에 이르러 호는 농은이요, 훈공으로 옥천 부원군을 봉하였으며, 생 휘 유(瑜)의 호는 건곡이요, 문과 전농시 부정으로 고려가 망함에 두문동에 들어가 스스로 옛 임금에게 충성하여 절의를 지켰고 그의 아들 휘 숭문(崇文)의 호는 죽촌이요, 무과 병마 절도사로 시호는 절민인데 세조(世祖) 병자(一四五六)년 육신의 화에 그 아들 교관공 휘 철산(哲山) 호 귀천으로 더불어 함께 순절하여 함께 겸천사에 배향하였다. 그의 아들 경(瓊)의 호는 두문인데 가화를 깊히 슬퍼하여 일생을 벼슬 아니 하였으니, 곧 공의 十一대 조였다. 덕오(德뵛)·달희(達希)·휴방(休邦)·수훈(洙勲)은 고·증·조 이로다. 유교를 숭상하였으며, 라주 림씨(羅州林氏) 지규(之圭)의 딸이 그 비(妣)였다. 공은 하늘에서 받은 바탕이 비범하고 형상이 증엄하여 어려서부터 여러 아이로 더불어 유히를 아니하고, 장성함에 문예가 크게 진취하여 고인 위기지학 으로서 힘을 썼다. 어버이를 섬기매 있어서는 그 뜻을 받들어 마음을 기쁘게하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의복으로 그 입과 몸을 봉양하였으며, 여러 아우를 사랑하여 한 이불과 한 베개에 자고 좋은 음식은 나누어 먹으며, 매양 집안간 길흉사에는 반드시 주문공 가례와 온공 잡의에 따라 행하였다. 경진(庚辰)년에 외간을 당하여 예제에 지나치도록 슬퍼하고, 비록 풍우 한서라도 조석으로 성묘하며, 三년을 하루갗이 거상 하였다. 모부인을 봉양하며 공은 의식이 부족 하여도 모친이 원한것은 다 받들어 드리고 모친이 또 쇠로하여 기동을 못함으로 혹 바람을 쏘이고자 하시면 공이 문득 업고 두어식경 뜰을 돌다가 방에 들었다. 세상을 버림에 정과 예를 먼저 초상시 같이하고, 공이 평생을 효우로서 근본을 삼고 청렴결백하게 몸을 지켜 화려한 것을 좋아 한 자는 교유를 끊고 빈궁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숨어살고 의리를 행하다가 혹 좋은때를 만나면 머리수건에 짚세기를 신고서 산수간에 놀며, 매양주자시(朱子詩) 거문고와 글로 四十년(琴書四十年)을 몇번이나 산중 손님이 되었던가(幾作山中客)를 외우며 스스로 즐거워 하였다. 고종(高宗) 병신(丙申)년 二월 一일과 임인(壬寅)년 五월 二十八일은 공의 생졸한 날이다. 내기촌후 선영하 곤좌에 안장하고 부인은 함평 이씨(咸平李氏) 태헌(泰憲)의 따님으로 묘소는 부장하였다. 아들은 용원(鎔元)·용형(鎔亨)·용의(鎔義)·용정(鎔貞)이요, 딸은 김 기만(金基萬)·박 창원(朴昌原)처며, 손자는 운길(雲吉)·운광(雲洸)·운기(雲起)·운섭(雲燮)·운병(雲炳)·운석(雲石)·운주(雲珠)·운천(雲湶)·운종(雲鍾)·운갑(雲甲)·운호(雲鎬)·운의(雲儀)고 나머지는 다 기록 아니한다. 아! 공이 효도하고 우애하며, 청렴하고 결백한 것은 가히 세상에 쓰일만 한데 말세를 만나 능히 펴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가석하도다. 비록 그러나 그 사행이 향방의 모범이 된게 많으니, 이것 이야말로 가상한 일이라 하겠다. 용원이 묘도에 표할 글을 나에게 청함으로 사절하다가 부득히 하여 장문에 의거하여 대략 모와서 위와 같이 쓰고, 이어서 새겨 말하기를 공이 주장한 바는 효우 그 행실이었으며 公之所主 孝友其行矣 공이 지킨 바는 청렴결백 그뜻 이었다. 公之所守 廉潔其志 이 누구 무덤인고 일사의 유택이니 是誰之墓 逸士攸藏 아! 초 목동 들이여 혹시라도 이곳을 범하지 말지어다. 吁嗟樵牧 母或戕之矣 파평(坡平) 윤요중(尹堯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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